유대인 탐방
2017.11.20
장막절의 초대
잘 알고 지내는 유대인 친구의 집에 장막절에 초대를 받았다. 세 가정을 초대 했는데, 네델란드에서 이민 와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가정과 NSW 주 남부에 사는 호주인 부부와 한국인인 우리 가정이 함께 만났다. 오래 알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여러 행사에서 만나고 변호사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내와 둘째 아들과 함께 초대한 집이 있는 시드니 동부에 있는 Dover Heights라는 동네를 찿아 나섰다. 아내는 자신이 영어가 서툴어 가기가 어색하다며 발을 빼는 바람에 둘째 아들이 옆에서 대변인 역할을 하기로 하고 조금은 이상한 조합인 부부와 아들, 이렇게 3명이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시드니에서 30년 남짓 살았지만 이곳은 처음 와 보는 동네이다. 본다이 비치와 해변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웅장한 집들이 이곳의 부유한 가치를 쉽게 짐작케 한다. 집과 해변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내와 아들이 “와우! 시드니에 이런 부자 동네가 다 있었네!” 하며 놀라워 한다. 친구의 집에 가까이 오니 머리에 키이퍼를 쓴 유대인들이 여럿 보였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부유한 곳이라는 것은 설명없이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유대인 친구의 집은 웅장 하지는 않지만 아래 위층이 깔끔 하게 정리되어 있고, 새로이 집을 수리해 집의 외관과 집안 어느 곳도 흠 잡을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의 가구와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회당의 랍비나 유대인 친구들을 초청 하곤 하는데 이번 장막절엔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들이 저녁 초대를 받아 그들의 장막절 음식을 대접 받게 되었다. 보통 장막절은 유대인들의 신년을 맞이하는 9월 말에서 한 주간의 대속죄 일을 지낸 후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하던 것을 일주일 동안 기념하는 절기이다. 장막절은 유월절(무교절), 오순절(칠칠절)과 함께 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초막절과 수장절로도 불린다. 장막절에 관한 율례는 레위기 23:33-44과 신명기 16:13-15에 나온다. 이 날은 장막에서 지내 듯 수영장 옆의 쉐드를 텐트처럼 공간을 이용해 저녁 식탁을 준비 하였다. 쉽게 말하면 이들의 장막으로 저녁 식사를 초대 받은 셈이다. 히브리어로 몇 줄 성경을 읽고 주인인 Roland가 짧은 기도를 하고 식사는 시작 되었다. 둘째 아들은 오늘 저녁에는 반드시 광야 음식을 먹을 것이므로 자기는 먼저 파스타를 먹고 가겠다며 오는 길에 이미 어느 정도 배를 채우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식탁에는 따뜻한 빵과 야채와 맑은 습(Soup), 소고기와 닭고기요리, 과일과 아이스크림, 직접 구운 디져트는 밖에 어느 좋은 고급 음식점에서도 보기 드문 풍성하고 정갈한 음식이 제공 되었다. 건너 편에 앉은 아들의 얼굴을 보내 후회가 막급한 표정이다.
흔히 유대인들이 장막절(초막절)이 되면 광야의 생활을 기억하느라고 이스트가 들어 있지 않은 빵(무교병)에 쓴 나물을 담아 유월절에 하 듯 급히 구워 낸 닭고기와 함께 케밥처럼 싸 먹는 것으로 알아 왔는데, 현대 유대인의 가정은 그저 정결 절차(Kosher)를 거친 닭고기와 소고기를 대접 하면서도 갓 구운 빵과 버터와 잼, 풍성한 과일을 대접하며 이 수확의 절기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도 공유 할 수 있는 친교의 시간임을 확인 하게 한다. 모세의 시대로부터 3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정체성을 잘 지키면서도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되었다. 언젠가 친구 랍비가 유대인들의 광야 음식이 맥도날드의 햄버거의 원조라며 농담을 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물론 유대인의 장막절은 출애굽을 기억 하는 것에 그 초점이 있다. 하나님이 애굽의 왕성한 선진 문화 가운데에서도 유대인들의 문화가 지켜지게 하고 그들을 마치 독수리의 등에 새끼를 엎어 안전한 둥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있다.
출애굽이 있기까지 애굽의 왕 바로와 애굽의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열 가지 재앙을 통해 보여 주셨다. 궁극적으로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안전하게 애굽으로 부터 탈출 하게 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직접 체험하게 하면서 그들에게 출애굽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들에게 보호자가 되시며 약속과 보호 하심에 신실하신 분임을 기억 하게 하신다. 그래야 그들의 불안정한 광야의 삶에 늘 든든한 하나님이 요새와 방패가 되며 쓰디쓴 나물을 먹어야 하는 환란의 시간 가운데에서도 보호하시는 창조주의 손길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편안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주인과 아내의 친절로 주제가 풍성한 대화로 가득한 저녁이 되었다. 한국에 다녀 올 때 사온 결혼 한복을 담은 액자 선물도 식탁의 대화에 한 몫을 거들게 되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궁금함과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식탁을 둘러 앉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였다. 배불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쾌한 대화로 떠들다 보니 어느 덧 밤 10시가 훌쩍 지났다. 장막절을 지내는 유대인 친구 Roland는 여러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려고 하는 지 이 저녁 식사를 통해 알게 해 주었다. 자신의 신앙을 강조 하지 않더라도 친구를 존중하고, 사랑을 전달하려는 그의 세심한 배려는 장막절 식탁을 준비한 손길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명절에 고향에 돌아온 친한 친구를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 듯 유대인 친구의 친절한 초대는 따스한 우정과 감사가 쌓이게 한다. 그가 자리를 일어나는 우리에게 살며시 벗겨진 텐트 위로 새어들어 오는 별빛을 가르킨다. 그러면서, 장막절에는 장막에서 식사도하고 담소도 하며 척박한 것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벗겨진 장막 틈새를 통해 비치는 별 빛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늘 임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킨다고 말한다. 오늘 듬뿍 환대를 받고 자리를 떠나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빛처럼 임하고 있었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근사한 선물을 줘서 감사하다며 볼을 비비고 허깅을 하고 배웅을 받으며 모두 흡족한 마음으로 따스한 감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아들이 엄마의 영어를 보완해 주는 대변인 역할을 잘 감당한 듯하다. 아들의 사랑이 엄마에게 머무르고 유대인 친구의 사랑을 다시 마음에 확인 하는 따뜻한 저녁 초대가 되었다.
그들의 명절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늘 확인 하게 한다.